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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폐지와 해방의 서사들: 19세기 전반 프랑스 반노예제 담론에 미친 프랑스 혁명과 아이티 혁명의 영향, 그리고 ‘아이티 혁명 침묵시키기’ 과정에 대한 고찰, 1814-1848


<재단 제25기 해외유학장학생 U. of Chicago 서양사학 박사, 현 서울대학교 강사>

본 논문은 프랑스 혁명과 아이티 혁명의 유산이 19세기 전반 프랑스에서 벌어진 식민지 노예제와 노예해방에 관한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한다.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생도맹그(Saint-Domingue; 지금의 아이티)에서 노예제에 반대하는 또 다른 혁명을 촉발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1794년 유럽 국가들 중 최초로 전면적인 식민지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으나, 나폴레옹이 노예제 복구를 시도함에 따라 생도맹그는 전쟁 끝에 1804년 아이티로 독립했다. 노예제를 둘러 싼 두 혁명의 기억은 혁명 후 프랑스에서 노예제폐지론(abolitionism)을 자코뱅 급진주의, 공포정치 및 식민지 전쟁과 독립을 연상시키는 급진적 운동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19세기 전반 프랑스에서는 노예제폐지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이 전개되었다. 기존의 연구들은 19세기 프랑스의 노예제폐지 운동을 유럽 노예제폐지론의 선도자였던 영국의 영향력과 영국 정부가 가한 외교적 압박의 결과물로서 설명하는데 주력해 왔던 반면, 본 논문은 혁명기에 본국과 식민지 양쪽에서 벌어진 노예해방의 경험과 그 정치적 결과가 이후 프랑스에서 영국의 모델과는 다른 형태로 노예제폐지론이 형성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하여 본 논문은 혁명 후 프랑스의 반노예제 담론과 혁명의 유산과의 관계를 크게 두 영역에서 분석한다. 첫째, 혁명기 노예해방에 관한 복잡다단한 기억들과 그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혁명 후 노예제와 식민지를 둘러 싼 논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둘째, 혁명기 노예해방의 결과물이자 최초의 노예해방후 사회의 사례로 간주된 아이티 공화국을 둘러 싼 노예제폐지론자와 찬성론자 간의 첨예한 대립이 프랑스의 노예제폐지론과 인종 문제에 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 과정에서 본 논문은 트루요(Michel‐Rolph Trouillot)가 제기한 “아이티 혁명 침묵시키기”명제를 수정, 보완하여 아이티 혁명이 프랑스의 기억과 담론에서 “침묵”당하는 역사적 과정과 그 정치적 효과를 탐구한다. 특히 이 논문은 아이티 혁명은 “생각할 수 없는 일(unthinkable)”이었기 때문에 침묵당했다는 트루요 명제의 함의와 문제점을 고찰하면서 “침묵”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서구가 식민지에 관련된 부정적 기억들을 다루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프랑스 노예제폐지론을 연구하는 기존 시각들의 협소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두 가지 방법론을 채택했다. 첫째, 노예제 문제를 식민지 또는 국외 문제로 고립시키는 전통적인 시각을 지양하고 프랑스 국내 정치와 반노예제 논쟁의 연결점에 주목한다. 19세기 전반 프랑스 정치에서 두드러진 것은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관한 반혁명파와 친혁명파의 갈등, 즉 혁명을 둘러 싼 “기억의 정치”였다. 이러한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프랑스 혁명과 아이티 혁명을 어떤 종류의 서사(narrative)로 조직하는가, 이 서사에서 두 혁명의 교차, 분절하는 관계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하는 문제들이 반노예제 정치의 핵심이 되었다. 둘째, 이 논문은 프랑스의 반노예제 투쟁을 횡대서양적(transatlantic) 관점에서 재정의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식민지인들, 특히 생도맹그 출신 백인 농장주들, 프랑스 식민지 출신의 유색인 엘리트, 아이티의 유색인 지배 엘리트, 이 세 식민지 집단들이 프랑스 노예제폐지론에 미친 다각적 영향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반노예제 담론의 발전을 프랑스 국민국가 내부의 지적, 도덕적 발전의 소산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을 배격하고 여기에 얽힌 횡대서양적 연결망과 본국‐식민지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드러낸다.

본 논문은 총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는 현재 프랑스에서 노예제와 식민지의 기억이 논의되는 정치사회적 맥락, 프랑스 노예제폐지론이 프랑스와 서구 학계에서 논의되어 온 역사학적 맥락, 그리고 아이티 혁명이 근대 서구의 역사에서 어떻게, 왜 침묵되었는가에 대한 현재의 이론적 논쟁의 맥락, 이 세 가지 맥락에서 이 논문의 주제와 문제 의식을 살펴본다. 본론의 첫 장에서는 노예 반란을 피해 프랑스로 피난 왔다가 난민이 되어버린 생도맹그 출신 백인 농장주들이 복고왕정기 반혁명파 공세의 선봉에 서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반혁명 담론과 노예제지지론의 결합이 노예제와 식민지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한다. 두 번째 장은 복고왕정기 동안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이 프랑스 혁명의 유산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아이티 혁명과 아이티 공화국의 지지자가 되었는지 조사하면서 이들의 반노예제 정치 활동의 함의와 한계를 탐구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7월왕정 이후 권력의 중심에 선 엘리트 노예제폐지론자들이 자유와 해방의 역사를 프랑스 민족주의 담론의 일부로 만들면서 어떻게 아이티 혁명과 아이티의 존재를 여기에서 소거했는지 밝혀낸다. 네 번째 장은 시릴 비셰트(Cyrille Bissette)로 대변되는 식민지 출신 자유 유색인 엘리트들이 혁명의 기억과 아이티의 의미를 대안적 틀에서 전유하여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또 다른 갈래의 노예제폐지론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이상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헤게모니를 획득한 본국 중심의 자유의 역사가 1848년 2공화정의 노예제폐지 과정에서 어떻게 정책화, 제도화되었으며 어떠한 역사적 유산을 남겼는지 고찰한다.

본 논문은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지향한다. 첫째, 프랑스에서 반노예제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혁명의 유산들, 특히 아이티 혁명과 아이티에 관한 논쟁이 핵심적 역할을 했음을 밝혀낸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노예해방 과정에 대한 대안적 설명틀을 제공하는 한편, 아이티 혁명이 프랑스 노예제폐지론에 미친 지적, 정치적 충격과 여파를 밝힌다. 둘째, 반노예제 논쟁이 비단 노예제뿐만 아니라 프랑스 시민권, 인종 문제, 프랑스 제국의 경영과 미래 등을 비롯한 폭넓은 범위의 담론들을 파생시켰음을 보여 준다. 특히 노예해방 이전과 이후 프랑스 국민국가 내에서 식민지인들(백인 농장주, 자유 유색인, 흑인 노예)이 어떤 지위를 가질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논쟁들을 살펴봄으로써 프랑스 시민권 개념에 대한 갈등과 협상이 반노예제 논쟁의 중심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셋째, 본 논문은 혁명기의 반노예제 투쟁을 둘러 싼 담론들의 경합이 어떻게 프랑스 본국을 자유와 해방의 근거지로 주조하는 지배적인 민족주의 서사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본 논문은 아이티 혁명을 망각하고 침묵시키는 역사적 과정이 프랑스 혁명을 보편적 자유의 근원으로 기억하고 축성하는 근대 프랑스의 민족주의, 식민화 담론 형성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였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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