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제15기 해외유학장학생 Chicago U. 심리학 박사, 현 서울산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필자의 연구 분야는 인지심리학의 세부 주제 중 ‘판단과 의사결정’이다. 실상 이 분야를 전공하게 된 것은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인연이 깊다. 아마도 대학 4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재단 도서관에서 우연히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그림 참조)'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고 대출을 해왔고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대학은 일부 열람실을 제외하고는 폐가식으로 운영이 되었기 때문에 서가에 들어가 직접 책의 내용을 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재단 도서관은 신나는 곳이었다. 서가에 들어가 이 책 저 책 들춰보고 책 내용을 본 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사람들이 확률적인 판단을 할 때 확률 이론이 제시하는 것처럼 하기보다 주먹구구식으로 판단을 하고 그 결과 여러 판단의 편향을 보인다는 내용이었고, 이 책을 편저한 Kahneman과 Tversky는 이후 2002년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고 근래 우리나라에도 관련 서적들로 대중들에게도 알려진 행동경제학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당시 이 책을 통해 이런 연구 주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안 필자는 이런 분야를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유학을 가고 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이 분야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원에서는 이 분야를 전공한 교수님이 안 계셨기 때문에 바로 유학을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고 이 책과 이후 관련 논문과 도서들을 좀 더 찾아보고 읽어보면서 알게 된 지식에 근거해 유학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의 유학준비는 정말이지 무지해서 용감했던 것 같고 그 결과 첫 해에는 입학허가를 받지 못했다. 다음 해 다시 준비를 하였고, 1992년 10월 시카고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당시 시카고대학 심리학과에는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William Goldstein과 Kahneman과 Tversky의 연구를 비판하고 대안적인 접근을 제안한 Gerd Gigerenzer가 있었고 경영대학에는 Robin Hogarth, Richard Thaler, Joshua Klayman, Elke Weber, Christopher Hsee 등이 있었다. 뒤에 세 분은 모두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이었다. 사람들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이 워낙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그리고 여러 직업군에서 나타나다 보니, 이 분야에 대한 연구도 심리학, 심리학 내에서도 인지심리, 사회심리, 조직심리 등과 같이 여러 세부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심리학 외에서는 경영(마케팅), 경제, 행정, 법, 의학, 통계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당시 시카고대학에는 경영대학에 Center for Decision Research가 있었고 이곳에는 판단과 의사결정 분야의 대가들이 머물러 갔고 우리나라에서는 서강대 경영학과에 계시는 하영원 교수님께서 필자에 앞서 이곳에서 공부를 하셨다. CDR에서 매주 한 번씩 외부 인사를 초청해 워크숍을 했는데, ‘Behavioral Science Workshop'이 그것이었고, 분야의 대가들 또는 젊은 연구자들이 와서 발표를 했다.
지도교수의 첫 수업을 들으면서, 이 분야에 Kahneman과 Tversky의 heuristics & biases program외에 다른 접근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덕에 분야에 대해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후 지도교수와 논문 reading을 하면서 당시 Kahneman이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은 논문 “Predicting a changing taste: Do people know what they will like?”을 읽으면서 지도교수와 나눈 대화가 화두가 되어 이후 자기 자신의 선호학습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게 되었다. Kahneman 논문의 핵심은 사람들이 반복적인 경험으로 인한 선호 변화를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호 변화를 그리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본 필자는 일상생활 자체가 학습에 호의적인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경험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호의적인 학습 환경(반복 경험과 피드백)을 제공해주면 자신의 선호에 대한 학습에서도 학습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체험 피드백’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피드백을 소개하였다. 이 피드백을 기존 학습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어온 결과 피드백(outcome feedback)과 비교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실체험 피드백이 선호 학습을 가져오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결과 자체도 흥미로운 것이고 자기 자신의 선호를 학습하는 유일한 원천일 수 있는 실체험 피드백이 왜 큰 학습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지 그 가능한 이유를 제시하는 식으로 논문을 구성했어야 하는 것을 당시에는 처음 쓰는 논문이라 그런 구성이나 해석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제일 주된 결과는 실체험 피드백이 학습에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다른 부수적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실체험 피드백이 결과 피드백과는 다른 종류의 학습을 가져오고 작지만 학습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을 하다 보니 설득력이 부족했다. 지도교수는 필자의 논문이니 단독으로 논문을 내라고 격려해주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학위 취득 후 결혼 등의 이유로 바로 귀국했고, 이후 경영학과, 심리학과,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하면서 관련 연구를 해왔다. 서강대 경영학과에서는 하영원 교수님의 연구 팀에서 ‘가치혁신’이라는 주제로 주로 소비자 의사결정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후 성균관대 심리학과에서는 도경수 교수님과 함께 ‘한국어 지식의 구조와 활용’이라는 과제에서 어휘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였다.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어휘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과 위험을 나타내는 형용사와 위험대상 명사(예, 핵발전소, 자동차 등)의 분류과제를 통해 일반인들이 위험에 대해 갖는 의미차원을 도출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후 고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의학의사결정(medical decision making)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지만 교실 자체 업무가 많고 주로 의료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교육과 연구에 교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 별도의 연구를 수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면서 환자가 의사와 함께 치료 의사결정을 내리는 ‘공유된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과 이의 구현을 위해 환자의 의료정보 이해능력(health literacy)이 중요함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고대와 연대 심리학과에서 1년씩 post-doc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대에서는 성영신 교수님과 소비자들이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긍정선택)할 때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제거하고 남는 것을 갖게 되는 부정선택의 처리과정의 차이를 실험연구와 fMRI연구를 통해 수행하였고, 그 결과 두 선택방식이 인지적 과정과 정서적 반응에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고대에 있는 동안은 신경경제학 관련 연구를 하시는 김학진 교수님의 fMRI 연구방법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는데, 단독으로 fMRI연구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연구방법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연대에서는 서은국 교수님 랩에 있었고, 행복 연구에 노출될 수 있었다. 자신이 행복한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게 느껴지는지, 이런 것은 판단의 문제인데, 실제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평가치로 요약한다는 것은 인지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다. 이런 판단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지적 전략이나 편향,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였다.
앞서 언급한 연구 과제로 요구된 주제 외에 최근에는 ‘돈’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고 흔하게 사용되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앞으로 2~3년은 돈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무엇이며, 돈은 우리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현재까지는 고액권과 관련된 사람들의 지불 행동, 돈의 형태가 갖는 사회관계적 의미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현재는 돈과 권력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고 보니 여러 곳에서 일을 하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의만은 아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롭게 배우고 나를 훈련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올 3월부터는 서울산업대 경영학과에 자리를 잡게 되어, 이제는 과제에서 요구되는 주제가 아닌 필자 스스로 찾아낸 주제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아직은 강의와 학과 일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지내느라 해오던 연구도 잠시 손을 놓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짬짬이 생각만 하고 있다.
구체적인 연구 주제가 무엇이 되던 내가 이 분야를 고집하고 계속 공부해올 수 있었던 것은 공부가 공부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과 삶의 지혜를 공부와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판단과 의사결정 분야를 공부했다고 해서 남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요구되는 의사결정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결정을 한 후 나타난 결과와 그 과정에 작용하는 삶의 불확실성을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