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제27기 해외유학장학생 Columbia U. 경영학 박사, 현 CUNY-Baruch College 경영학과 교수>
2003년 여름.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유학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보다는, 온통 앞으로 닥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다른 재단 가족들과는 달리 나는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석사과정부터 시작해야 했는 데다가,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던 내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뉴욕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돌이켜 보면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유학생활이 나 자신을 많이 낮추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유학 준비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유학을 처음 결심했을때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회계법인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TOEFL, GMAT 등의 영어시험 준비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여러 회계학 박사과정에 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참담하게 모두 불합격이었다. 다만 한 학교에서 석사과정으로 어드미션이 왔는데, 그 학교가 일리노이 주립대학(UIUC)이었다. 미국에서 석사를 한다고 해서 박사과정 어드미션이 보장되지는 않는 데다가 적지 않은 등록금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오랫 동안 이 문제로 고민하였다. 유학이 과연 내가 가야할 길인가에 대한 회의조차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학원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하고 있던 힘든 상황이 결과적으로는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우선 공부를 계속 했을 경우의 내 미래와 공인회계사를 계속 했을 경우의 내 미래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이 두 가지 대안중 어느 경우에 내가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결국 나의 선택은 불확실성을 감수하더라도 유학생활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었다.
어려운 결정 끝에 선택한 유학생활이었지만 일리노이에서의 석사과정 역시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석사 수준의 경영학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려면 수업시간 중에 적절한 질문과 코멘트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이런 것들이 어색하였고 영어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느 과목에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없이 오직 수업참여도와 과제물로만 학점이 주어졌기 때문에 내가 크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수업을 들으러 갈때마다 수업중에 혹시 하게 될 수도 있는 말들을 수없이 연습해 놓고 때로는 결국 한마디도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석사과정에서조차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사과정 입학을 위해서는 좋은 추천서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미처 못한 말을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을 찾아가 질문하는 형식으로 전달함으로써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만회하려 하였다. 결국 몇몇 교수님들로부터 좋은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컬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 회계학 박사과정에서 어드미션을 받게 되었다.
박사과정에서도 나는 일리노이에서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대부분의 박사과정 수업이 그러하듯이, 회계학 박사과정 수업들도 교수와 학생들간의 토론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일리노이 석사과정에서의 경험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석사를 하면서 회계학 지식이나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강해졌고, 이러한 자신감은 컬럼비아 박사과정 수업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사과정 처음 1-2년 동안 내가 주로 했던 고민은 연구분야의 선택이었다. 내가 유학중에 가장 공부해 보고 싶었던 주제는 관리회계(managerial accounting) 분야에서 기업의 성과평가 시스템 개선이었는데, 컬럼비아에서는 이 주제로 논문을 같이 쓸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연구주제가 결국 재무회계(financial accounting) 분야의 기업가치 평가(valuation)였는데, 좀 우습게도 이 주제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관심없어 했던 분야였다. 하지만 컬럼비아에는 이 분야의 대가들이 있어 좋은 논문을 쓸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매력이 느껴지는 주제였다. 특히 내 지도교수가 되어주신 기업가치 평가이론의 권위자인 Stephen Penman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왜 이 주제가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기업가치 평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이 분야 연구의 주된 목적이 주식 거래를 통한 수익 극대화로 여겨졌고 굳이 박사를 하면서까지 돈 버는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을가 하는 회의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Penman 교수님은 회계정보에 근거한 기업가치 평가 모델을 이용하여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에 보다 큰 의의를 두셨다. 비슷한 연구를 하더라도 이처럼 보는 관점을 바꾼 것이 내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분야 연구를 흥미롭게 할 수 있는 원천이 된 것 같다.
오랜 고민 끝에 내 주된 연구분야를 결정하고 박사 2년차에 관련된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나는 또다른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 논문을 박사논문으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으로 3년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지만, 박사논문으로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데다가 지도교수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어봐도 문제점을 해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다른 세부 주제를 정해야 했는데, 이 주제로 새 논문을 쓰기까지 지도교수님께서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셨다. 회계학 연구의 권위자이시면서도 학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유능한 분을 내 지도교수님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 생각이 든다.
박사논문에서 나는 기업가치 평가에 있어 회계기준의 역할을 분석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어느 특정 회계기준이 회계정보의 신뢰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투자자들은 이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검토하였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지만 회계학 박사로 유학을 결심한 계기가 (다소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보다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내 박사논문을 보면서 비록 처음에 관심있어 한 세부분야는 아니었지만 결국은 내가 의도했던 것처럼 회계정보 이용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논문을 쓰게 된 것 같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다.
나의 유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준비 과정부터 순탄하지 않았고, 유학생활 초기에 수업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박사과정에서는 연구주제 결정 및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 뉴욕시립대(CUNY Baruch) 경영대학에서 내가 그동안 꿈꿔왔던 교수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유학생활에서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어렵게 내린 의사결정이 결과적으로는 결실을 맺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유학중인 다른 재단 식구들도 혹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나의 경험이 의사결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갈 길은 아직도 멀고, 앞으로도 내게 주어진 길을 가면서 내 자신을 더더욱 낮추게 될 일도 많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은지를 계속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수 있다는 희망으로, 앞으로 닥칠 또다른 도전들을 즐기면서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