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제7기 해외유학장학생 Stanford U. 경제학 박사, 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몇 년 전에 재단으로부터 테마 기획 나의 연구에 대한 원고를 요청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크게 소개할 만한 것이 없어서 완곡하게 사양했는데, 이번에 다시 동일한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 사이에 크게 바뀐 것은 없으나, 그래도 이제까지 해온 연구의 내용을 한 번쯤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 선친이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셨던 관계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재단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빨리 접할 수 있었다. 필자가 재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80년 겨울에 학부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재단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 (중정)가 위치한 남산 밑에 있는 수정다방 건물 2-3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좋은 조건으로 장학생을 뽑는 것에 대해서 중정에서 돈을 대어 요원을 뽑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필자는 선친으로부터 고 최종현 회장께서 사재를 털어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설립된 재단이라는 것과 유학을 가려면 꼭 지원해보라는 말씀도 들었다. 당시 중정에 대한 소문 때문에 경쟁률이 낮은 덕분(?)을 보았는지 학부 1학년말에 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셨던 선친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에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스탠포드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당시 경제학은 미시경제학은 게임이론, 거시경제학은 합리적 기대이론, 계량경제학은 시계열분석 및 미시계량이론이 주된 연구분야였다.
거시경제학에 대해서는 크게 흥미를 갖지 못하여서 미시나 계량 가운데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재단 장학생 출신으로 현재 일리노이대학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있는 조인구 교수가 당시 프린스턴대학 대학원생으로 지도교수가 스탠포드대학으로 연구년을 오게 되어 같이 따라 오게 되었다.
게임이론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전혀 생소한 분야였으므로 유학을 나갈 때 아무런 사전 지식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조인구 교수가 게임이론을 전공하고 있어, 유학 1년차에 게임이론과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교수로 있는 Kreps라는 젊은 게임이론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임이론은 원래 수학의 한 분야로 개발된 이론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본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가 게임이론에 큰 기여를 하여 수학자지만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내쉬(Nash)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경제학 뿐 아니라 수학에도 나름대로 관심이 있어 앞에서 언급한 Kreps교수 를 지도교수로 하여 게임이론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제까지 주로 게임이론에 관련된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게임이론은 여러 경제주체가 의사 결정할 때 한 사람의 효용이 자신의 선택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선택에도 의존하는 상황을 분석하는 분야이다.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은 게임이론을 이용한 3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논문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에서 한 경제주체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속성에 대한 명성(reputation)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분석하였다. 두 번째 논문은 두 경제주체 간의 협상에 대한 문제를 분석하였고, 세 번째 논문은 게임이론을 법경제학 분야에 응용한 것으로 두 경제주체가 분쟁을 화해 또는 법정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것과 처음부터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로 노력할 유인이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4년 동안 가르치다가 95년에 귀국하여 현재까지 계속해서 연구는 게임이론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연구 성과의 일부를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었음을 나름대로 작은 성취로 생각하고 있다. 95년에 귀국한 이후 게임이론 뿐 아니라 산업조직론 분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산업조직론은 시장에서 기업들의 의사결정과 그것이 시장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분야로, 경제주체 간의 상호의존성을 연구하는 게임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경제학 분야이다.
산업조직론 분야에서는 특히 통신시장에서 기업들의 가격 책정 및 묶음판매등과 같은 다양한 행동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와 병행하여 20년 가까이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그 동안 가르쳐온 내용을 교재로 정리해서 출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까지 3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첫 번째 저서는 조인구 교수와 공저한 “게임이론”이다. 학부 3-4학년을 대상으로 저술한 책인데, 약간의 난이도가 있는 관계로 이따금씩 해외서 경제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로부터 박사과정 1년차 미시경제학의 게임이론 부분을 공부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연습문제 해답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받기도 한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학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저서가 아닌 역서인데 “경제학 원론”이다. 경제학 원론은 일반적으로 필자의 나이에는 쓰기에는 버거운 작업이다. 그런데 한 출판사에서 흔히 세계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의 현 의장으로 있는 버냉키 (Bernanke) 프린스턴대학 교수와 코넬대학의 프랭크(Frank)교수가 공저한 경제학 원론의 번역을 요청해 왔다. 필자의 능력으로는 평생 경제학 원론을 지필하기가 어려웠을 터인데, 이 책을 훑어보니 우리나라 경제학 교육에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 다른 교수와 함께 공역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저서는 “미시경제학”으로, 사실은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책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장 늦게 출간되었다. 필자가 학부에서 경제학 원론, 미시경제학, 게임이론을 강의하는데, 3권이 출간됨으로써 각 과목마다 학생들에게 저(역)자직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관심있게 연구하는 분야는 시장설계(market design)라는 분야이다. 시장설계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에서 시장이 작동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시장이 작동하도록 거래방식을 설계하는 분야이다. 특히 전력시장과 통신시장에서 시장설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력시장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력(한전)이 전기를 생산해서 공급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한전의 발전부분이 6개 자회사로 분할되어 전력도매시장에서 상호 경쟁을 통해서 한전에 전력을 판매하고 있다.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도매 수준에서 전력이 거래되도록 시장을 만든 것이 바로 시장설계의 한 예이다. 현재의 도매거래방식은 과도기적인 방식인데, 예정대로라면 다음 단계로 이미 넘어갔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의 상태가 예상외로 오래 지속되고 있다. 현재의 전력거래방식을 분석하고 다음 단계의 거래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통신시장의 경우에는 주파수 경매라는 시장설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 IT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다양한 통신서비스의 출현은 주파수에 대한 수요를 크게 증가시켜, 과거와 달리 주파수가 매우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 희소한 주파수를 얻기 위해서 기업들은 매우 큰 금액을 지불하였고, 앞으로도 추가적인 주파수를 얻기 위해서 지불할 용의가 있다. 현재 많은 선진국에서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할당하기 위해서 경매(auction)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경매방식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경매를 통한 주파수 할당을 고려하고 있다. 주파수 경매는 설계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경매설계를 잘해서 큰 성공을 거둔 나라도 있는 반면에 잘못해서 실패한 나라의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매를 통해 주파수를 할당한 경험이 없으므로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의 경매방식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나라 상황에 가장 적절한 경매방식을 설계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하에서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을 통한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역에서 시장이 작동하게 됨에 따라서 시장설계는 경제학이 현실적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되어 당분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80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해 온 지도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남아있는 시간에 대해서 더 큰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연구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소득이라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