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28기 해외유학장학생 출신, 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 조교수>
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임희자 과장님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위 취득을 축하함과 동시에 유학 일기 원고를 부탁하시는 전화였다. 흔쾌히 수락하고 전화기를 내려 놓자마자 이내 걱정이 몰려왔다. 뭔가 재단 식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런 글을 쓸 내공이 있나, 이제 막 학위를 마쳐놓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건방진 처신은 아닐까…등을 고민하다가 나 같은 사람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을 수 있고 또 교수직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 혹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학을 처음 나왔던 2004년 가을 수업 내용은 잘 들어오지 않고 가끔씩 들려오는 “철주”라는 선생님의 발음에 놀라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told you”였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를 의미하는 “As I told you”의 후반부 발음이 마치 내 이름과 같이 들렸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영어 실력으로 올 여름에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올 가을부터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조교수(assistant professor)로서 일하게 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유학을 나오기 전까지의 난 한국의 공교육을 충실히 받아왔고 영어권 국가라고는 한 달 이내로 두 차례 정도 배낭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인 소위 “순수 국내파”였다. 그것도 “영어 정도는 이제 기본”이라는 시대의 대세에 크게 개의치 않고 살아왔던 탓에 유학 일년 차 때엔 영어 수업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 유학 생활의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보다 외로움이었다. 그 문제의 영어 역시 2년 차를 넘어서면서부터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고, 전공 공부하는 것 역시 한국에서부터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로 기초가 나름 탄탄했던 탓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미국 지도 선생님(academic advisor)의 눈에 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 동료들과의 융화는 그리 쉽지 않았다. 학교나 학과 차원에서 주최하는 파티에서 난 늘 외톨이가 되기 쉬웠고, 아주 소수의 열린 마음을 가진 친구들 아니면 이들과 친구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에겐 여전히 미국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이 논문 한편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울 정도로 느껴진다. 따라서 자연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귀어왔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이처럼 나에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낯선 환경에 던져져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역시 인간 관계였다. “늘 내 편인 사람, 늘 나를 믿어주는 사람, 늘 날 긍정적으로 생각해주는 사람” 나에게 유학 생활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아예 없어지거나, 있더라도 아주 멀리 있거나, 아주 소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로움을 극복하며 큰 탈없이 박사 학위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내 덕택이 크다. 유학 전 한국에서 만나 2007년 결혼한 내 아내가 없었다면 난 더 많이 좌절하고 더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고, 속상한 일이 있고 좌절을 겪을 때마다 달려가 신세 한탄도 하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던 아내가 내가 공부한 필라델피아에서 수 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큰 축복이었다. (내 아내는 버지니아주의 샬롯스빌에 있는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유학생들에게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친구 혹은 가까운 가족은 아닐지언정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고 공부 이외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지인이 하나 둘 정도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열심히 생활한다 해도 24시간 내내 공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외로운 생활 환경 속에서는 작은 일에도 더 쉽게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는 나의 문제 의식을 해결하는 데 있어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내 유년기 때부터 막연하게 자라왔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이를 사회 공학적(social engineering)으로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고자 했던 나의 이상은 나와 유사한 세계관을 공유했던 선생님들과 이를 탐구하는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을 가르쳐 주셨던 연구자들 덕분에 조금씩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필라델피아라는 도시 자체도 내 연구 문제를 탐색하는 데 있어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누구나 미국의 대도시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목격했을 것이다. 골목 골목마다 전혀 다른 인종, 전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어느 지역은 접근조차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생활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펜실베니아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장을 보러 가던 내가 전철 창 밖으로 내다봤던 서부 필라델피아의 슬럼가! 필라델피아는 스컬킬 강(Schuylkill River)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는데 강의 서쪽 지역 중에서도 43가를 지나면 도시의 풍경 자체가 완전히 바뀐다. 교민들이나 한국 유학생들이 자주 찾는 한국 슈퍼마켓이 69가에 위치해 있어 이 마켓에 가려면 우리들은 43가 너머의 소위 험한 지역을 거쳐야 했다. 내 눈에 서부 필라델피아 슬럼가는 미국이 아니었다.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텅 빈 건물들, 반쯤 타다 남은 흉측한 집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부랑자들, 갱단을 연상케 하는 불량 청소년들…그리고 이러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 눈에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 연구 문제가 바로 개인이 처해 있는 생활 환경과 미디어 이용이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여 다양한 건강 관련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나는 개인이 처해진 사회 환경이 그 개인이 접하게 되는 건강 관련 정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정보 습득은 더 나아가 개개인이 미디어 채널로부터 얻게 되는 또 다른 종류의 건강 정보와 상호작용을 하며 궁극적으로는 건강 관련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보았고, 이를 실증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내 박사 논문이다.
내 유학 생활에서 내 지도 선생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Robert C. Hornik, 선생님께서는 젊은 시절 제 3세계 국가의 건강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셨고, 실제로 수 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에서 건강 관련 미디어 캠페인을 평가하시고 미디어 캠페인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들을 탐색하셨던 분이다. 최근에는 미국 국내 문제로 관심을 돌리셔서 미국인들이 건강 관련 정보를 미디어 및 대인 채널에서 어떻게 습득하며, 그 효과가 각 개인의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상이하게 나타나는지를 연구하고 계시는 건강 커뮤니케이션 (Health Communication)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시다. 이 분은 미디어의 이용과 효과는 진공 상태에서 논의되어서는 안되며 수용자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관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 연구들을 통해 나에게 일깨워 주셨다. 이 분은 논문 작성 내내 내 연구 모델을 정교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고, 논문 작성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특유의 낙천적 웃음과 여유 있는 자세로 날 이끌어 주셨다. 유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며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유능한 지도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라 믿는다.
결국 나의 지난 5년의 유학 생활은 “하루 하루의 생존”과 “학문적 이상” 이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당장의 삶이 고단하고 외로웠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고서라도 궁극적으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이 더 나은 연구 환경과 일생을 가져갈 문제 의식, 그리고 이를 과학적으로 해결할 정교한 도구였던 만큼 지난 5년의 내 삶도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 이제 겨우 내 연구 방향에 맞는 첫 번째 논문을 마쳤을 뿐이다. 더 나은 연구를 수행해서 내가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거대한 사회적 문제들의 일부라도 내 손으로 직접 탐구하고 싶은 학문적 욕심이 크기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다시금 크나큰 기대로 부풀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