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10기 한학연수장학생 출신, 현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나의 주된 관심은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다. 동아시아라고 할 때는 한국ㆍ월남ㆍ일본ㆍ중국 네 나라를 포괄하는데, 이들 네 나라는 중세시기에 한문문명권에 속한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같은 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 한문문학과 민족어문학을 발전시킨 내력을 탐구해서 각국 문학이 동아시아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밝히는 내용의 <<동아시아문학사>>를 서술하는 것을 연구의 일차 도달점으로 상정하고 있다. 물론 지배민족인 비엣족(월남), 야마토 민족(일본), 한족(중국)의 문학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안의 여러 소수민족의 문학도 포괄하여 명실상부한 동아시아문학사 서술을 이룩하고자 한다.


현재 나의 연구는 한국문학 연구에서 출발해서 월남문학 연구로 넘어가 한 차례 매듭을 짓고, 일본문학 연구를 시도하는 단계에 있다. 본격적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사상과 글쓰기의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김시습은 유학의 이(理), 불교의 공(空), 도교의 기(氣)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했으며 동시에 강렬하고 도저한 현실비판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김시습은 진지한 탐구와 비판정신에 상응하는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실험하고 개척했다. 그래서 김시습의 사상과 글쓰기의 상관관계가 문제가 된다.
그 난해함으로 말미암아 본격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를 분석한 결과 김시습의 다양한 탐구가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김시습은 유학ㆍ불교ㆍ도교에 대한 탐구를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귀결시키고, 이ㆍ공ㆍ기에 대한 탐구가 기지실사(氣之實事)에 대한 탐구로 귀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김시습의 사상과 글쓰기>>로 보고하고, 이어서 <<조동오위요해>>를 번역해서 <<김시습 조동오위요해의 역주 연구>>(소명출판, 2006)를 냈다.
일찍이 석사학위 논문의 테마를 정할 때부터 동아시아 비교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석사학위 논문에서 고려후기 충지(?止, 1226~1293)를 위시한 동아시아 네 나라의 시승(詩僧)의 시문에 나타난 민족의식을 비교 고찰했다. 하지만 월남어로 된 연구서를 읽지 못하고 한시문만 읽고서 논문을 쓰다 보니 한계가 분명했다.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월남어와 월남문학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1998년 여름부터 1999년 여름까지 월남 하노이에 머물면서 월남어를 배우고 자료를 수집했다. 월남어 역시 우리말처럼 한자어가 많아서 월남어를 배운지 몇 달이 되지 않아서 월남 학자의 연구논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월남어를 배워서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 여귀돈(黎貴惇, 1726~1784)의 문학사상을 다룬 월남 여성학자의 박사논문이었는데, 구어체로 된 초등학교 교과서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일상회화는 잠시 접어두고 전문연구서를 읽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귀국해서 월남의 <<춘향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전소설 <<취교전(翠翹傳)>>을 번역해서 출간했고, 월남문학 전체를 다룬 연구서 <<월남문학의 이해>>를 완성해서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연구가 미비한 가운데 <<월남문학의 이해>>를 집필하다 보니 일일이 자료를 찾고 번역하고 의미를 따져야 했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들었다.
어렵사리 <<월남문학의 이해>>를 쓰면서 월남문학의 몇 가지 특징을 알게 되었다. 월남 문학은 외세의 침입에 맞서 민족의 자주적 기상을 고취하고, 민족 구성원의 삶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의 문학사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은 듯하고, 문학작품 비평에도 그다지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월남에서 중세시기에 문학비평이 빈약한 것은 철학이 부진한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철학의 원론에 대한 반성과 의심, 여러 세대에 걸쳐서 끈질기게 지속되는 문제의식, 관점과 견해가 달라서 생겨나는 학파의 분화와 길항 - 이러한 일은 중세시기 월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처럼 이루어진 철학적 탐구가 다음 대의 제자에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 때문에 월남 중세시기 철학 글쓰기는 논쟁적이지 않고 서론적인 수준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말았다.
월남어를 표기하는 차자표기인 쯔놈(喃字)은 익혀서 구사하기가 어려웠고 표기법의 통일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문학의 향유방식 가운데 ‘말하고-듣고-보는’ 향유방식이 발전한 것은 이런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조건은 민족어 기록문학의 전반적인 열세, 하층민(여성)의 기록문학 참여 저조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운문을 높이 평가하는 의식과 쯔놈의 어려움이라는 외적 조건이 결합해서, 운문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산문이 기대되는 영역일지라도 모두 운문에 흡수되었으니, 예컨대 중국 서적의 번역도 운문으로 하고 소설도 운문으로 썼다. 위에서 말한 <<취교전>>은 민요에 기원을 두고 있는 6ㆍ8체 형식의 3,254행으로 된 운문소설이다.
월남의 최다수 민족인 비엣족은 구비서사시 전승이 끊어진 점에서 월남 내 많은 소수민족과 달랐다. 비엣족은 중세로 전환하면서 창세서사시, 영웅서사시 구연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 비엣족은 연극을 애호하고 발전시켰다. 하층 민속극은 물론 상층 연극도 융성했다. 18ㆍ19세기의 월남인은 내면의 깊은 슬픔, 절절한 내면의 정감 표현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런 미의식은 상층 연극에도 영향을 미쳐서, 중세이념을 수호하는 영웅의 숭고한 투쟁을 비장하게 그렸다.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를 위해서 일본문학 또한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한문학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 일본 한문학에 대한 국내 연구가 극히 부진해서 이 또한 거의 맨바닥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지금은 일본 한문학사 서술의 경과와 특징을 고찰하고, 중세시기 시승문학(詩僧文學)인 오산문학(五山文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한문학은 중세시기 내내 시승의 한문학이 융성했고, 변체 한문학이 두드러지며 근대화의 주역이 한시문을 여전히 애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특징이 드러난 이유와 양상, 그리고 동아시아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일본 한문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오산문학연구>>, <<동아시아 시승문학연구>>, <<동아시아 문학의 관점에서 본 일본한문학>>과 같은 책을 계획해서 집필하고 있다.
동아시아 비교문학 연구는 <<동아시아문학사>> 서술을 일차적인 도달점으로 삼는다. 월남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지배민족에서 소수민족으로 관심을 넓혀가면서 이론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자 한다. 아직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동아시아문학사>>를 상당한 분량과 수준을 갖추어 서술하기까지 차분하게 연구를 진행해가고자 한다.